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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 조직

Rector de Honor : Dr. SUKGIN PARK

Precidente de Consejo : Dr. YOUNGBEM KIM

Fundador : Pablo Leam

Consejo : Wonju Kim.

Consejo : Youngil DO.

Rector : Devir Perez Vazquez

Director: Cesar Frutuoso Vazquez Santizo

Maestro : Ma. Phileung Han

Administrador : Feliciano Perez Mendoza

Maestra Musica : Misionera HEIDI HAN  

Secretaria : Eunice Diaz Lopez

 

MEXICO ALL MISSIONmam-img

MEXICO ALL MISSION의 약자로서 M.A.M은 즉 어머니의 마음으로 멕시코 전 지역을 효과적으로 선교하기 위하여 신학교, 대학원, 농업선교, 개척사역, 문서선교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하는 종합선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선교전략을 위하여 기도하며 지금까지 열매를 맺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을 위하여 이름을 맘 선교회(MEXICO ALL MISSION)로 정하고 미국과 한국에서 조직되어 선교비를 모금, 관리를 하며, 선교사가 현지에서 선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비영리 단체이며 모든 선교비는 MEXICO ALL MISSION 구좌로 입금하여 총회에서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선교비의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선교 지원을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


1. 선교사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선발되어 파송을 받았는가?

2. 선교사가 공신력 있는 선교 일을 하고 있는가?

3. 그리고 선교사가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가?

한국의 경우 – 우체국 700419-02-120619, 으로 보내시면 되며,
미국의 경우 – 미국 BANK OF AMERICA 은행에 계좌 번호 : 01884 – 11797
  NAME : MEXICO ALL MISSION 으로 직접 입금하거나,  교회나 개인첵을 Mexico all Mission 받는 사람을 쓰셔서    P.O.BOX 1132 ., EL CENTRO CA 92244 U.S.A. 로 보낼 수 있습니다.

 

  바하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 설립취지 및 원칙


– 설립 취지

멕시코 선교를 위한 기초조사를 한 결과 현재 멕시코 선교의 문제는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가 부족한 결과이며, 장로교 신학교 및 목회자를 조사한 결과 중부 이북에 국경을 중심한 곳에는 신학교가 없었으며, 기존 신학교는 자체 노회에서 교수를 초빙하여 교육여건이 되지 않았고,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교운영이 어려웠으며, 멕시코 민족 장로교의 교세는 2018년 현재 71개 노회와 15개 시노도로신학교를 시작한 1998년 전국 목사의 숫자는 500여명이었으나 현재는 800여명이라고 통계가 나왔으며 목사의 숫자는 전국 교회 수(3500여개 교회)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보다 신학교를 세워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 선교를 위하여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1. 멕시코 복음화는 멕시코 인에 의해서 이룩함이 가장 바람직하다.

2. 멕시코 선교의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3. 오늘 지금 이 지역에서 신학교 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멕시칼리시는 남부에서 올라 오는 인구로 좋은 선교적 위치에 있으며, 미국 서부와 인접하여 많은 개신교 교회와 협력이 가능하여 경제적 후원이 가능한 곳이다.
. 멕시칼리시는 미국 서부의 유명 신학교의 교수들을 초빙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 멕시칼리시는 광야사막에 위치하여 영적 교훈과 영성 훈련을 위하여 좋은 지리적 여건이다.

 

- 신학교의 설립 원칙들

1. 사명감 있는 영적지도자 양성
사명감 있는 영적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새벽 기도회를 의무화 하고 1년에 2번의 성경통독 식사전 요절암송.

2. 졸업생들을 통하여 처치 플랜
미전도 지역을 발굴하여 복음을 전하고 개척교회를 통하여 처치플랜.

3. 농업선교를 통한 교회 지원
개척한 교회의 재정 지원을 위하여 농업선교를 통한 소득증대 사업을 이루어 나간다.

 

  멕시코 선교의 필요성

1521년 스페인이 멕시코에 도착하였을 때 아스테카인들은 세계의 본질인 허무의 암흑과 싸우는 태양에게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쳐, 여기에 활력을 주어 영원히 아스테카 시대를 지속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스테카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행하기 위한 여러 개의 대신전을 수도에 세웠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달력에 의해 제일(祭日)을 정하여 각종 의식을 행하였으며, 또한 산 제물을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강대한 군사조직을 만들어 끊임없이 정복을 행하고 포로를 모아들였다. 아스테까 사람에게는 포로를 사로잡거나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해서 죽는 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런 그들을 선교했을 것이다. 그러나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멕시코 가톨릭은 교황청에서 조차도 이교화 되었다고 할 정도로 토착화 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원주민 그룹에서는 지금도 개신교로 개종을 하면 마을에서 추방하거나, 집을 불태우거나, 돌팔매 질을 하여서 죽이거나, 총으로 죽이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서 순교의 피가 이어 지고 있으며 특히 60여개의 전혀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는 원주민 마을에서는 99년 11월에 한 TV에서 방송된 내용을 보면 개신교로 개종한 400여명의 사람들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핍박을 지금도 받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돌로 치거나, 총으로 쏘며, 몽둥이로 두들겨 패거나, 집에 불을 질러 추방하며 순교의 피는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영화화한 “상그레 데 띠에라”(피의 땅)란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미국과 가까이 있어서 미국 선교사들이 오래 전 부터 선교를 하였지만 선교는 쉽지 않았던 나라로 말을 하기도 한다.

멕시코는 초창기에 삼등분을 하여서 북부는 감리교, 중부는 침례교, 남부는 장로교회가 사역을 하도록 하여서 불필요한 경쟁을 막았는데 남부에 장로교회가 들어가면서 원주민들의 보수적인 것이 맞아 떨어져 많은 부흥을 가져 오게 되었지만 아직도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못한 마을이 많이 있어서 마을 입구에 목사 장로 설교자의 출입을 엄중히 제한하며 복음을 전하면 감옥에 넣는다.라고 하는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는 마을들도 있다.

1914년 교회가 발전하면서 미국 PCUSA와 멕시코 장로교회 I.N.P.M.(Iglesia Naciona Presbiteriana de Mexico)는 MISSION CON JUNTA INTERNACIONAL 기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1973년 미국 선교부는 더 이상의 물질적 선교는 덕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모두 철수하는데 멕시코 장로교회의 다른 한 교단인 Reformada(미국P.C.A후원)는 계속 상주하면서 멕시코 장로교단과 치아파스 각 노회 회장들과 Mission Con Junta 를 1년에 한 차례 모이게 되었다.  이제는 중남부를 가릴 것 없이 자유로 선교를 하게 되었으며 Reformada는 중부를 공략하고 있으며 미국 PCUSA는멕시코 민족 장로교회와 현재 미국 국경을 중심으로 있는 도시 지역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선교사들이 모든 행정을 결정하였고 원주민들은 결정권이 없던 것이 1998년부터 동등한 입장에서 일을 하도록 합의 한 것이 또 다른 선교 원칙이 되어 있어서 국경지역 목회자의 생활비를 올려 놓게 되었고, 우리 신학교도 자신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운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지게 되었다.

멕시코에서는 노회마다 신학교를 설립할 수 있어서 메리다, 비예르모사, 따파출라시에 에레켐페르 신학교 등이 세워지게 된다. 이유는 원주민들이 4년간 멀리 떨어져서 돌아오지 않거나, 현지 문화와 다른 것을 배워 온다는 것을 정치적 이유로 내세우면서 지금까지도 그것을 내세워 다른 신학교는 못 가게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북부선교를 위해서는 장로교의 불씨를 치아파스에서 가져 올 수 밖에 없어서 남부 치아파스주를 중심으로 여러 종족의 원주민 2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원주민을 위한 선교사가 파송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그렇게 선발된 원주민 2세들은 신학교육을 모두 받고 일부는 북부지역의 선교를 위하여 택함을 받고 그 나머지는 현지로 돌아가서 종족별 사역을 하게 되는데 한인선교사를 각 종족 별로 파송 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세워진 신학교가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 이다.  실제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배출되어 현지 원주민 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으며 북부의 경우 2016년 부터 모든 임원이 우리 신학교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2017년 11월 본 신학교에서 열린 멕시코 전국 장로교 대표 회의에서 우리 신학교가 교육, 영성훈련, 건물, 식사, 등에서 최 우수 학교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지역 노회에서는 우리 신학교에만 학생들을 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노회적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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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선교에 있어서 야기될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카톨릭의 형식화되고 미신화된 신앙으로 인한 전도의 어려움이다. 멕시코에서는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면 이미 예수를 다 믿고 있는데 또 어떤 다른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척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누가 완전한 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멕시코아이들은 예수님은 뒷전이고 과달루빼라고 말했다. 그때 과달루빼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이며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그의 몸을 빌린 것이라고 했다.

사실 멕시코에서의 카톨릭은 결단 없는 세례와 회개와 중생 대신에 형식적인 의식과 성물숭배와 예배(미사) 생활의 결핍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이들은 “마리아 숭배교”라 할만큼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집집마다 예수의 모습보다는 마리아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멕시코에서 말하는 마리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백인의 마리아나 한국에서 이해되는 카톨릭이 아닌 거무접접하게 생긴 인디오의 얼굴을 한 과달루빼(Guadalupe)라고 하는 마리아로서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는 다른 마리아로서 일종의 멕시코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지금 멕시코 시 변두리 북쪽에 있는 과달루빼 이달고에 과달루빼 이달고 성당(Guadalupe Hidalgo Basilica)이 있다. 서반아 사람들이 멕시코를 정복한지 10년 후인 1531년 12월9일에 Juan Diego라는 한 원주민 청년이 미사를 드리러 교회로 가던 길에 지금 이 성당이 서 있는 언덕에서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디에고 청년에게 한 말은 “내가 원주민 들을 도와주고 싶으니 교회 감독에게 이 길로 가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디에고는 곧 교회 감독에게 가서 성모 마리아의 말을 전했다. 이때 감독은 디에고에게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다. 디에고의 대답은 거무접접하게 생겼더라고 했다. 그 대답에 감독은 한마디로 “아니다. 성모 마리아는 검지 않고 희다 그러므로 네가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성모 마리아는 다시 그에게 나타나 같은 지시를 했다. 디에고는 다시 감독에게 가서 같은 말을 전했다. 이 말에 감독은 디에고에게 성모를 보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올 것을 명했다.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도리가 없었으므로 디에고는 12월11일에는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 다음 12일 날 디에고는 그의 숙부의 질병 때문에 그 지방 신부를 부르러 가는 길이었는데 다시 성모 마리아를 만나게 되었고, 만난 증거로서 그 황막한 언덕에 피어 있는 장미꽃 몇 송이를 꺾어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감독에게 가라고 말했다. 12월 중순은 겨울이라 멕시코 중부 고원에서는 장미가 피는 계절이 아니었으므로 이때의 장미꽃은 감독을 설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숙부의 병은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곧 감독에게로 가서 모든 것을 전하라고 했다. 이 일을 보게 된 디에고는 곧 감독에게 가서 보자기를 풀고, 장미꽃을 감독에게 내 보이면서 이것이 성모 마리아를 만난 증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에 또 다른 이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그 보자기 안에 성모 마리아의 거무접접한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가 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닌데 거기서 나왔으므로 감독도 이제는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성모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거기다 교회를 세우고, 제단 위에는 그 이적 중에 생긴 초상화를 걸었는데 이것이 멕시코의 수호신인 과달루빼 마리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화되고 미신적인 카톨릭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경에 기초한 구원의 근본을 전함으로 복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멕시코인 들은 오랜 스페인의 지배로 교육을 통제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통치자들은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통치하기 쉽다는 것을 감안하여 표면적인 교육정책만 실시하였으며 문맹정책을 썼던 것이 사실이며 또한 교육을 백인이나 부유한 집 자녀에게만 실시하는 특권적으로 인식되어 현재까지도 전체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교육 수준은 형식화된 카톨릭 신자에게 성경 말씀에 기초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원주민 지역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핍박이 심각하여서, 지금도 개신교로 개종을 하면 부락에서 쫓아내거나 집을 불태우거나 돌팔매질을 하는데 논자가 만났던 한 청년은 200여명이 둘러서서 있는데서 돌팔매질을 맞았다고 울먹였으며, 실제로 개신교로 개종을 하여 죽은 많은 사람들을 현지 개신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사진)들을 통해서 본적이 있으며 그 유족들을 만나서 위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카톨릭은 유리하게 하고 개신교는 불리하게 하였다.

 

 

  선교지 멕시칼리

BAJA CALIFORNIA주의 수도이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로서 사역지 멕시칼리는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이며 멕시칼리(MEXICALI)라고 하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멕시코와 캘리포니아가 합쳐진 이름이며 또 깔리라고 하는 것은 뜨겁다고 말을 할 때 깔리엔떼라고 하는데 멕시코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란 뜻이 있으며 이곳 지역 특성상 여름의 온도는 섭씨 45도에서 50도씩 오르내리는 곳이기도 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소똥과 진흙을 이겨서 벽돌 모양을 만들고 말린 뒤에 다시 마른 소똥 덩어리를 사이사이에 넣고 불을 붙여 소똥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산다. 여름이면 아예 파리 모기가 다 죽어버리고 없다. 지형적으로 바다보다도 낮은 지역에 완전한 모래 사막에 세워진 도시인데 그랜드캐년을 만든 콜로라도 강물이 마지막 빠져 가는 곳으로 그 물이 생명을 살게 하며 푸르름이 있게 한다. 면화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이 연간 3-4모작으로 재배되는 곳이었지만 미국과 맺은 NAFTA협정으로 인구 100여만명의 산업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남부에서 올라 온 싼 인력이(1일 공장 근로자의 임금은 $5불정도(98년초 현재 일일 근로자 법적임금은 42페소(1$=8.50페소)로 미국의 1시간 임금 6불50센트 보다도 낮다. 2014년 현재 일일 임금은 $8~10 정도임) 많은 공장을 유치했다.

하나님의 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선교 현지에서는 전략 없이 보낸 선교사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되고 있으며 선교사도 홍수 시대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선교의 문제점을 말하다가 보면 하나님의 선교 자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모두가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오히려 문제를 바로 알고 나면 선교가 더 잘 되어 질 것이라 믿는다.  선교는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땅에 보내신 사건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오늘 우리가 그 사역에 동참하는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는 단순한 교회의 행사가 아니다. 즉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교회는 시작되어야 하며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는 부흥되어져야 한다.

 

1. 선교의 동기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

한 신문에 기고한 제목 중에 “선교는 구제가 아니다”.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구제는 구호기관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란 영혼구원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열매를 맺어 복음의 확산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구제는 선교를 위한 한 방편이지만 잘 못 하면 독이 되어 받는데 습관이 되어 버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타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고 죽어 가는 영혼을 위하여 울어주는 기도로 영혼을 건져내어 생명을 살리는 자체인 것이며 선교전략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이해 될 수 있는 공신력이 있는 열매 맺는 효과적인 선교가 되어야 한다.

즉 구령열에 불타는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야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선교사가 현지에서 구제품을 나누어 주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정도의 사역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수많은 선교사가 현지에 필요할 이유가 없으며 이미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내는 교회에서도 몇 년 하고 나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하겠다고 하는 구제성 선교는 잠시 열심으로 할 수 있어도 결국 하나님의 선교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일을 한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일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로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야 할 사람들이다.  (빌 2: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 . )

어느 곳이나 선교지가 어렵지 않는 곳이 없지만 선교사가 현지에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선교비를 보내거나 은혜 받을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확산이 자랑이 되어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 전 삶의 관심과 초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영혼구원과 일치가 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며 새로운 선교행전이 쓰여 질 것이다.

2. 전략적 선교로 실제적 선교의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한다.

오늘의 선교는 옛날 한국에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을 맞아서 거의 모든 지역이 이미 뿌려진 복음의 터전에서 시작하므로 오늘 지금 그곳에서 어떠한 선교가 가장 효과적이며 타당성이 있는 좋은 선교 방법인가 하는 선교 전략을 만들어 필요한 사역을 위한 선교사를 선택하여 파송하고 여러 교회가 합력하여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각 교단과 교회가 열심히 보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파송된 선교사와 이웃나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를 통해서 오늘, 지금 현지에서 가장 필요한 선교전략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앞서 선교하던 나라의 노하우를 참고하여 국가별 선교전략을 만들어 총체적 관리를 해 나가야 한다. 선교는 열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흉내를 내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정밀한 분석을 통한 선교전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합리적 선교를 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선교는 열심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열심자체는 반드시 식어질 때가 오며 열심 자체가 식어질 때에는 결국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선교사를 필요한 만큼 지원하여 합리적 선교방안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각 총회는 앞 다퉈 선교사의 숫자를 늘려 나가면서 전략이나 사역은 고려하지 않고 생활비만 되면 파송을 하였고, 이민교회를 담임 하는 한인교회 목회자까지 선교사의 숫자에 넣게 된 것이다.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 전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한정해야 하며 선발에서부터 목회를 하다가 실패하고 갈 곳이 없는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명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선교사가 못 먹고 못 살아 불쌍해서 선교비를 보내야 한다면 숫자를 줄여서 보내야 하며 이미 보낸 선교사들은 합리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현지로 나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아직도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로 하고 있는 지역이 너무도 많이 있지만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선교사를 필요한 만큼 채워서 합리적 선교를 해 나가야 한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확산 즉 열매를 맺는 선교를 통해서 새로운 선교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하는데 숫자가 많아야 하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초대 교회는 두세 사람이 있어서 모든 일 능히 감당 할 수 있게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1차 전도 여행을 돌아와서 2차 여행 때는 그들이 분쟁해서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또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고 나중에 또 디모데를 만나고 이래서 이 3차전도 여행이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온 세계전도를 하는데 발판을 놓고 오늘 우리까지 예수를 믿게 영향력을 미친것을 본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는 사명자가 필요한 것이다.
 

 

  멕시코 선교전략

 1. 멕시코 선교전략

오늘의 선교는 옛날 한국에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을 맞아서 전 세계가 거의 모든 지역이 이미 뿌려진 복음의 터전에서 선교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지금, 이곳에서 어떠한 선교가 가장 효과적이며,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기초조사를 하여서 타당성 있는 선교 전략을 세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선교는 구제가 아니다. 어려운 곳에 구제비를 배당하듯이 선교지에 선교비를 배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장이 필요하며, 배신하는 인간을 바라보시며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심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선교는 타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고, 죽어 가는 영혼을 위하여 울어주는 기도로 영혼을 건져내어 생명을 살리는 자체인 것이며, 선교전략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이해가 될 수 있는 공신력이 있는, 열매를 맺는 효과적인 선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의 9배 크기의 멕시코에서는 지역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교전략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의 선교전략이 각기 다르게 이해되어 져야 하며, 백인과 메스티조 그리고 여러 족속의 원주민을 위한 선교전략도 각각 상황을 달리 하고 있다. 많은 선교사가 현지로 나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더 많은 선교사가 현지로 나가야 하지만 꼭 많은 한인선교사가 나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선교사가 나가서 국가적으로 선교의 문을 막아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고 나갈 수 있지만 공신력 있는 선교 전략이 앞서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멕시코 선교전략은 이미 복음을 접한 일반적인 멕시칸들도 중요하지만 멕시코에는 현재 60여개의 전혀 다른 말을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원주민 그룹들이 있어서 각각 자치구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원주민 사회에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현장을 아무런 전략이나 준비가 없이 들어간다면 결과는 많은 시간과 선교비를 낭비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또 이들을 위하여 종족별로 각각 한인 선교사를 보낸다고 하여도 많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멕시코에서는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 선교’가 현재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시급한 선교 방법 중에 하나이며, 원주민 2세들을 이미 있는 현지 노회나 교회에서 선발하여 신학교에서 4년의 정규 신학대학 과정을 거쳐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로 양육시킨 뒤 다시 현지 선교사로 재 파송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선교하게 하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는 일은 매우 효과적인 사역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나무를 심는 것은 열매를 얻기 위한 것이며, 공장을 세우는 것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좋은 선교 전략으로 신학교를 설립하고 전략적 선교를 통한 개척교회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심고 물을 주는 역할에 불과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한 분이심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① 씨앗을 심고, ②싹이 나서 자라고, ③꽃을 피우고, ④ 열매를 얻게 된다.

이 원리를 선교에 적용한다면 ① 원주민을 선발하여 ② 4년의 신학과정을 통하여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로 자라고, ③ 현지 선교사로 복음을 전도하여 ④ 개척교회를 세워 복음을 확산시켜서 전도한 교인 중에서 다시 신학생을 선발하여 신학교로 학생을 보내므로 인하여 전략적으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선교 방법이다.

이러한 선교 전략은 경비 절감 면에서도 한인 선교사 1명을 파송 하는데 드는 비용이 월 2,000불이라고 했을 때 월 100불이면 신학생후원이 가능하게 되어, 적어도 20명의 신학생이 풀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으며, 2,000불의 예산으로는 매월 200불의 생활비로 10명의 현지 선교사를 후원할 수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면서 좋은 선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왔던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말을 잘해도 오늘날 한국교회를 목회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과 같이 현지에서 사명감 있는 사역 자를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떠한 선교방법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하며, 멕시코 복음화는 멕시코 인에 의해 이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멕시코 미 전도종족의 복음 화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논자가 다녀온 멕시코 남부의 원주민 선교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던 중 이미 복음을 받은 같은 종족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 그들의 2세를 위하여 신학교를 설립하여 4년간 신학교육과 영성훈련을 통한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게 해서 현지 선교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검토하게 되었다. 초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세계 선교의 일군으로 나선 바나바와 바울은(행13장) 단독으로 로마 영토를 복음화한 것이 아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이방 전도를 위하여 누가와 디모데와 실라를 각각 선교의 동역자로 훈련시켜 함께 일했다. 원주민 선교는 단시일에 한국선교사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현지인 선교 동역자를 양성하여 함께 복음을 전함으로서 비로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유부웅, 기독교는 아프리카를 구원하고 있는가?, (서울: 미션월드, 1992), 137.]

이를테면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고기를 잡아 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고기를 잡느냐라고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못살게 두들겨 패도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기에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확증했다.  [사도행전 4장 18절에서 20절]
행4:18-20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에 보면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불러다가 탄압을 하며 핍박을 하여 다시는 이 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너희들이 스스로 판단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너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게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들이 그와 같이 힘있게 확증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하는데 수효가 많아야 하는가 결단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는데 있어서 두 세 사람이 있으면 모든 일을 능히 감당할 수가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1차전도여행을 돌아와서 2차 여행 때에는 그들이 분쟁해서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또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고 나중에 또 디모데를 만나고 그래서 이 3차 전도 여행은 2, 3사람이 모여서 온 세계전도를 하는데 발판을 놓고 오늘날 우리까지 예수를 믿게 영향력을 미쳤다.

이처럼 선교를 하는데 반드시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명감 있는 원주민 선교사를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교’가 이룩되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하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교는 타문화 권에 복음을 전하여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울어주는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받으심 직한 제물(롬15:14-21)로 드릴 수 없는 일이다.

2. 신학교 설립목적

멕시코 선교사로 현장에서 선교하면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를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며 이미 미국에서 많은 시간 선교를 시도하였던 지역이므로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목적이다. 즉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드려서 섬길 수 있는 “목회자 양성”을 하는 것이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의 교육목적이며 이 목적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가. 성경적 신앙에 기초한 고도의 기독교 학문을 추구하게 한다.

신학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교과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기독교 역사적 유산의 각 분야별 체계 있는 지식 전달은 신학의 기초과목으로 필수적이다. 신학의 기초적 자원과 자료를 제공하는 성서학과 역사신학은 그것대로 불가결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고 신학전반에 방향을 설정해주는 조직신학과, 신학전체가 지향하는 목표 실현의 직접적 방법론으로서의 실천신학과목은 그것대로 결코 등한시되어서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신학교육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신학의 성서나 교리와 신조, 교회사 등으로는 불충분하다. 현재의 삶속에서 제기되는 실존의 물음과 사회문제, 그리고 미래 멕시코사회의 역사적 도전에 직면해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한 계시적 의미와 가치 형성에 필요한 현실적 있는 신학을 위한 학문적 정보제공도 필요하다. 교과목 중심의 교육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과목에서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로 이 “무엇”이 신학교육을 산 교육이 되게 끔하고 신학교육 전체를 모으는 구심점이 된다.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는 바로 이러한 바른 신학이 서야 바른 선교가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바른 신학이 없다고 하면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복음과 선교가 변질될 수 있기에 바른 선교를 위한 바른 신학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신학교가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위치한 이유도 미국에 좋은 신학대학교의 교수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게 할 수 있다는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신학생들은 4,000㎞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이곳에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나.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경건한 삶을 훈련한다.

영성에 기초한 인격형성에 우선적 관심을 두고 있다. 성서에 기초한 기독교 진리는 과학이나 철학의 진리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성서에 기초한 기독교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인격화된 진리(Incarnated Word)”이다. 따라서 “목회자 양성”이라는 교육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육(受肉)의 복음”이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 속에 “복음의 수육”으로 인격화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목자다운 품격을 지닌 제자화(Discipleship)에 본 교육의 우선적 관심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성직자라는 직업은 다른 어느 전문직보다 한층 더 인격적 성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말로만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의 실천과 모범적 솔선수범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성직자는 어떤 인간이 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의 목표는 전문가 이전에 인격형성, 곧 기독교적 인간형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은 의인의 교리와 함께 성화의 교리를 이야기하면서 이 성화는 평생동안 이루어져야 할 과제로 보았다. 참 인간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참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의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일반 교육풍토와도 일맥상통한다. 종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 James)의 이론대로 세상에는 불우한 처지에서 자란 소위 상처 입은 병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신적,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인격형성이 더욱 더 중요하다 따라서 목회자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선한 목사”적 품격을 함양해야 한다. 인간다운 인간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인격의 덕목은 영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선교지의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이 시대는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냐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진리로 일치된 인격의 뒷받침이 없는 목회와 설교를 이 시대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의 내용은 교실에서의 ‘교과과정’못지 않게 생활 속의 경건훈련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바하 캘리포니아 장로회 신학교에서는 영적 경험의 고수준에 도달하도록 하여 능력 있는 목회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기 위하여 영성 훈련을 강화하였는데 멕시코는 새벽기도회가 거의 없는 나라지만 신학교 학생들에게는 새벽기도회를 의무화하였으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광야에서 철야기도회를 통한 신앙훈련을 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경건과 말씀의 훈련에 역점을 두어 능력 있는 주의 종들로 양육하기 위하여 매 학기초에는 성경 통독 시간을 넣어서 2주간에 걸쳐서 신구약 성경을 완독하지 않으면 다른 과목의 강의를 이수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매년 1회 성경시험을 실시하므로 성경에 대한 지식을 높여 나가며 멕시코에는 많은 사이비나 이단들이 있어서 성경과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확실하게 교육하여 변질된 사이비나 이단에 대처하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 멕시코와 남미의 선교를 위한 지도력과 사명감을 고취시킨다.

무엇보다도 선교에 대하여 불타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도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그 은사들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그리스도 없이 잃어지고 있는 전세계의 영혼에 대한 불타는 부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긴박감과 임박한 위험,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대체로 사라져버렸다. 우리들의 많은 설교자들이 더 이상 죽어 가는 사람으로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식이 없다.  L.E.멕스웰, 세계선교.전면전, (서울: 전도출판사, 1995), 48.  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지상명령에 대한 선교 사명이 불타는 교회만이 성장할 수 있고 하나님은 함께 역사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상 명령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와 사명과 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지상 명령에 따른 사명이 불타는 교회만이 성장할 수 있고, 그렇게 결속된 공동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 사역에 헌신하기를 열망하고 보람을 찾게 될 것이다.  차호원, 지상명령과 선교사명, (서울: 엠마오, 1987), 8.

이사야서 6:8에서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한 것과 같이 사명감에 불타는 선교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논자는 졸업식 때마다 학생들에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Heme aqu??, env?ame a m?)라고 부름에 응답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물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론으로 학생들이 쉽게 어느 날 갑자기 선교의 용사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는 듯하지만 막상 목회현장에서 일하려 할 때 방법을 몰라 적용을 못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도 많이 있다. 예컨대, 학교에서 성서에 관하여 배우지만 막상 지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성서를 가르치려 할 때 어떻게 가르칠지를 몰라 당황한다. 선교학과 전도학을 배웠지만 현장에서 개인전도 해야할 경우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황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현지의 신학교육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목회의 실제 방법론에 대해서는 소홀한 것이 신학교육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미래 사회의 다원화 현상을 내다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사역의 다양한 응답을 위하여, 목회를 위한 전문성에 초점을 두고 보다 내실 있는 훈련체계강화와 합리적 운영을 통해 창의적 있는 리더로서의 실천능력과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정의 내용개선을 하여서 현재의 신학교육이 지식전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미래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현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로서, 사역할 수 있는 일군으로 교육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사명감에 불타며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들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사명감을 쉽게 저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훈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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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장의 어려움

우리 신학교는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 선교”를 위한 전략선교로 시작하였으며, 멕시코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2세들이 현대 교육을 받았다는데 착안하여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헌신된 청년들을 이미 멕시코안에 있는 장로교 노회 안에서 추천을 받아 “사명감 있는 영적 지도자”로 양성한다는 것이 교육목적이다.  실제로 벌써 두 번의 졸업식이 있었으며 2003년 현재 17명의 원주민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되었으며 졸업생들로 하여금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교를 책임지고 일하면서 지속적인 선교 후원이 되지 않아서 어려울 때가 많았다. 특히 신학교 사역은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교수초빙과 학생들의 숙식 및 신학교 시설 운영비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1㎏에 5불하던 커피가 현재 50센트로 하락하여 재정능력이 전혀 없으며, 장학금 없이는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후원하던 한인교회는 어느 날 갑자기 선교비를 중단하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건축을 위해서 수고가 많다고 하던 사람들이 정작 건물을 거의 완성하고 학생들을 모집하여 신학교육이 시작되어 어려울 때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 판단하여 이제는 후원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을 했다. 건축이 선교가 아니고 어려운 곳을 돕고 구제하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선교는 구제가 아니다. 구제금을 배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교비를 보내고도 죽어 가는 영혼을 위하여 울어주는 기도를 드리는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즉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던 아버지 하나님의 심장으로 기도하고, 배신하는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심장으로 선교에 임해야 한다.

오늘 선교의 문제가운데 하나는 후원하는 교회들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역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선교사가 후진국에서 고생한다는 동정심에 더 무게를 둘 때가 있다.  물론 선교사인 자신도 같은 지역에 어렵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보면 동정을 하게 될 때가 많이 있지만 문제는 그 영혼을 사랑하는 구원사역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불쌍하니 도와주고 싶고 동정심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이지만 동정심 자체를 선교의 동기로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교의 동기를 동정심보다 더 강한 소명의식에서 찾고, 바울이 마케도냐인의 환상에 사로 잡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 알고 나가야 한다.

한국에도 전도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왜 해외에까지 가서 선교를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가 없을 것이다. 선교는 잘 살고 못 살아서 해야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복음이 없기에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곳에 복음을 전할 자가 필요하기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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